이 비는 고려초 효자로 이름난 이성만과 이순 형제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대흥면 동서리에 세웠던 것으로 예당저수지가 생겨 수몰될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을 대흥면사무소 앞에 이전시켜 놓았다.
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0 (대흥현조)大興縣條에 보면 大興戶長 이성만과 이순 형제가 모두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성만은 어머니 분묘를 순 또한 아버지 분묘를 지켰다.
3년의 복제를 마치고도 아침에는 형이 아우 집으로 가고 저녁에는 동생이 형의 집을 찾았으며 한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였다한다 또한 이들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고 봄, 가을에는 떡을 하여 부모님께 드리고 기쁘게 친척들과 나누어 먹었으며 한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연산군 3년(1497년) 지신사(知申事) 하연(河演)의 주청에 의해 가방교 옆에 세웠으며 이 비는 조선초기 양식의 화강암 비석으로 이성만 형제의 가득한 행실에 대하여 왕이 정문을 세워 표창하고 자자손손에게 영원히 모범되게 하라는 173자가 기록되었으며 형은 아우의 볏단에 아우는 형의 볏단에 밤중에 벼를 나르다 서로 만나는 내용으로 개편되기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내용이 실리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