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顧菴) 이응노(李應魯)화백(1904-1989)은 190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해강 김규진과 일본 남화의 대가 마쓰바야시게이게쓰에게 사사하였다. 1931년 제11회 신인작품 공모전을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1945년 일본색을 청산하고 한국회화의 전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단구미술원(단구미술원)을 설립하였으며 근대의 문장가 이신 정병조 선생께서 동진의 명화가 ‘고개지’처럼 되라는 의미로 “고암”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1944년 고암은 수덕여관을 구입하여 6.25동란시 피난처로 사용하였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폭으로 옮겨지기도 하였으며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요양할 당시 고향산천에서 삼라만상의 영고 성쇠를 문자적 추상으로 표현한 작품인 암각화를 조각하였다. 고암은 격조 높은 사군자, 동물화, 산수화 등의 동양화뿐아니라 독특한 문자추상 빠삐에꼴레등의 다채로운 화풍과 기법으로 한국그림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킨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