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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보부상촌

한국의 유통문화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내포보부상촌 The korea distribution-culture bobusang village

보부상이야기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총칭하는 말로, 전통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매개했던 상인입니다. 보상은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판매하는 봇짐장수를 의미합니다. 보상이 취급하는 물품은 주로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비교적 값진 물건인 직물․귀금속류와 잡화류 등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반해 부상은 부피가 크고 무거운 콩, 토기와 질그릇, 목재 수공품류, 기름 등을 취급하였습니다.

상세내용

보부상의 역사와 기록


오일장2
보부상들이 쓰고 다니던 모자입니다. 패랭이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쓰던 모자로,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습니다. 일반적인 패랭이와 달리 보부상이 쓰던 패랭이는 양옆에 목화솜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패랭이 모자 양옆에 목화솜이 달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고려 말에 이성계가 변방에서 교전하던 도중 부상을 당하자 그를 돕던 보부상 중에 목화 장수였던 백달원이 목화로 이성계의 상처를 응급 치료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왼편에 목화솜을 달게 했습니다. 그 후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으로 피난하게 되었을 때 임금이 부상을 당하자 이때 역시 솜장사를 하던 보부상이 치료했고, 난이 지난 후 임금이 그를 포상하고 오른편에 목화솜을 달게 하였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촉작대는 끝에 쇠로 만든 뾰족한 촉을 박은 작대기로, 물미장으로도 부릅니다. 지게를 받치는 지게 작대기이자 유사시에는 호신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보부상 유품으로 전하는 촉작대는 손잡이 부분에 용 문양을 새겨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촉작대의 용 문양과 관련해서는 패랭이 모자의 목화솜 설화와 같이 보부상 시조로 여겨지는 백달원이 화살을 맞고 위기에 처한 이성계를 구해 주었을 때, 나중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왕이 되자 보은의 뜻으로 부상청을 만들어 백달원을 두목에 임명하고, 왕을 상징하는 용 문양을 새긴 촉작대를 내려 주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보부상이야기 이미지 2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날 이외에 임시로 서는 시장을 난장이라고 합니다. 난장은 특별한 때를 맞아서 하루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0일간, 길게는 2개월까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난장판’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한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난전 상인들이 모여 어수선하게 벌인 난장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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